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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log with Photo - Domestic/금강산

[그땐 그랬지] 2008년 여름 금강산에서 골프를~

호텔에서 바라 본 금강산

몇 년째 남북관계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금강산 관광 역시 1998년부터 약 10여년 동안 진행되었지만 2008년을 끝으로 중단 되었다. 해당 기간동안 194만명이 금강산을 찾았었다. 지금와서 보면 이때 금강산을 둘러본 사람들은 행운아였다. 대부분은 우리나라 동해안 여행과 연계하여 짧게는 반나절부터 1박 2일까지 금강산을 방문 했었다. 회사일로 한창 바쁜 시기였던 나는 금강산 방문은 관심도 계획도 없었다.

기회는 뜻하지 않게 찾아 왔다. 당시 금강산에 우리나라 한 기업이 개발한 골프장의 회원권을 미래를 위해 구입했었다. 물론 큰 금액은 아니었다. 2천만원 남짓으로 수 억원대 골프회원권과는 방식이 다른 소멸식(충전된 선불카드와 유사한 방식)이었다. 골프장은 오랜 공사끝에 드디어 2008년 7월말 그랜드 오픈을 앞두고 있었다. 본격적인 개장에 앞서 회원들을 초청하는 행사가 있었다. 처음으로 북한땅을 밟아 볼 절호의 기회였다. 게다가 그 곳에서 골프까지 한다고 생각하니, 아주 뜻깊은 추억이 되리라 생각되었다. 

행사에는 회원 이외에 1인까지 동행할 수 있었다. 와이프와 함께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었지만, 골프를 배우기 전이라 안타깝게 함께 갈 수가 없었다. 평소 직장에서 나를 잘 돌봐 주시던 상사분에게 감사의 표시로 초대를 했고 2박 3일 일정을 함께 하기로 했다.  

북한은 엄연히 외국이기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오지눈 않았지만 출입국 심사는 해야 했다. 아 내 인생 처음으로 적법하게 만나는 북한 사람들. 북한, 북한사람에 대한 경직된 이미지를 교육 받고 자라온 탓인지 간단한 출입국 심사가 웬지 삼엄하게 느껴졌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 북한 땅에 접어 들었다. 도로 양쪽으로 높고 견고한 철조망이 계속 이어져 있었다. 철조망 안쪽만이 우리에게 허락된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통상적인 관광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여행자들은 금강산호텔 등에 묶었다. 우리는 골프장에서 호텔까지 운영하기 때문에 그 곳에서 묶게 되었다. 

골프장과 호텔은 아주 잘 준비되어 있었다. 라운딩을 도와주는 캐디는 중국동포였다. 장기적으로는 북한 캐디도 육성할 계획이라고 이야기 들었다.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숨겨진 공산주의 나라에서 가장 자본주의적인 운동 중의 하나인 골프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다.  

 

파(Par) 7홀이나 파3 깔때기 홀 등 골프코스 역시 설계가 잘 되 있었다.

파3 깔때기 홀(그린에만 볼을 올리면 누구나 버디를 할 수 있다)

이틑날은 금강산을 직접 둘러보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지금은 지명(아마도 구룡연코스)은 모두 잊었지만 처음 보는 북한의 산세가 설악산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달랐던 그 묘한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방문한 이후 정확히 1주일 후, 한 관광객이 북한군의 총탄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모든 관광프로그램은 중단 되었다. 골프 초청행사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