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stern US - 미국서부

Intro - Monthly stay in Western US

Unique Travel 2020. 7. 18. 07:54

0123

  다섯 번째 미국, 그러나 첫 번째 여행  

하필 2008년 금융위기 때 나는 뉴욕을 방문했었다. 나의 세 번째 미국 방문이자 뉴욕은 처음이었다. 다니고 있던 다국적 회사에서 2007년 나는 파트너(유한회사에서 파트너는 주식회사 임원과 비슷)가 되었다. 파트너가 되면 전 세계 신임 파트너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종의 행사를 진행하는데, 여기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시기가 공교롭게 리만브라더스가 파산하는 등 혼란이 최고조로 가고 있는 즈음이었다. 윗사람에게 이런 시기에 행사를 참여하게 돼서 죄송하다는 특별히 잘못한 것 없이 쓰는 의문의 반성문을 쓰기도 했다. 겉으로는 회사 업무였지만, 사실 특별한 업무 목적이 아닌 행사 참여였기 때문에 마음은 여행에 가까웠다.  

회사에서 예약해 놓은 호텔은 놀랍게도 타임스퀘어 바로 코앞에 있었다. TV에서나 보던 그곳을 나는 기억에 꾸욱 눌러 담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틈만 나면 빙빙 돌아다녔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전망대에 올라 맨해튼 섬을 둘러보면서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을 떠 올렸었다.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산 앤디 워홀의 복사판 그림은 아직도 집에 걸려 있다. 회색의 도심 속에 도도하게 녹색을 뽐내는 거대한 센트럴파크 벤치에 앉아 잠시 뉴요커처럼 여유를 부려보기도 했었다. 뮤지컬에 대해 평소 무심했던 그래서 무지한 나조차 감동시켰던 '헤어스프레이'. 10만 원이 넘는 가격에도 우리나라 70년대 극장 좌석 같았던 클래식한 공연장은 뉴욕 하면 떠오르는 나만의 추억이 되었다. 남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것을 눈에 담기 위해 선택한 유람선에서 자유의 여신상양키즈의 스테디엄을 먼발치서 바라본 것으로 나의 첫 뉴욕 방문기는 끝났다. 

사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업무 때문에 떠나는 비즈트립(Business Trip)에서 충분히 많은 시간을 내는 것은 쉽지 않다.
나 역시 그랬다.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의 눈도장. 주마간산( 走馬看山 )하면서 수박 겉핧기를 한다고 할까. 이것이 비즈 트래블러들의 공통되고 유일한 여행 원칙이다. 할 수 없이 '여행' 앞에 절대로 절대로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효율적'이라는 밉상 친구와 동행할 수밖에 없다. 그랬다. 나의 첫 번째 뉴욕은 '효율적'인 여행이었지만 '효과적'이지는 못한 여행이었다. 그러나 매년 뉴욕을 찾아오는 6천5백만 명중 의한 사람이 되었고,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아~거기.."라며 진짜반 허풍반 반반 토크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한 여행이었다.   

사실 나의 첫 번째 미국은 그로부터 10여 년 전 대기업 재직 시절이었다. IT부서에 근무하던 나는 업체의 초청으로 LA와 시카고를 방문했었다. 사진 한 장 조차 남아 있지 않고 어딜 갔었는지 정확히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첫 번째 미국은 그냥 설레는 '첫 경험'으로만 간직하고 있다. LA에서 시카고로 향하는 네다섯 시간 동안 하늘에서 내려다본 거대한 바둑판같았던 평원은 어찌나 부러웠던지 지금도 미국 하면 떠올리는 나만의 이미지가 되었다. 누군가 바다라고 이야기했어도 믿을 뻔했던 어마 무시한 크기의 미시간호(오대호중의 하나). 운 좋게도 랍스터 수확시기여서 1~2마리가 아니라 들통으로 사서 평생 먹을 랍스터를 먹었었다. 

이후에도 2001년 교육 목적으로 시카고 시내에서 한참 들어간 시골 동네의 교육센터를 방문했었고, 2016년 IBM 재직 시절 뉴욕 근처의 뉴저지 교육센터를 방문하기 위해 미국을 갔었다.  

이전 네 번의 방문은 어찌 보면 여행이라기보다는 둘러보기에 가까웠다. 모두 비지트립(Business Trip)이었고 공식적인 일정을 소화하면서 틈나는 시간에 여기저기를 둘러봐야 해서 시원하게 미국을 여행했노라고 이야기 하기는 쑥스러웠다. 미인의 발 뒤꿈치를 잠시 본 것으로 그녀를 안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드디어 2018년 나는 직장과 직업으로부터 자유로 워졌다. 안타깝게 경제적인 여유가 충분치는 못한 상태였지만, 가끔 가족들과 원하는 여행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는 생겼다. 나는 주저없이 미국으로 떠났다.

다섯 번째 미국이지만 앞에 어떠한 수식어도 필요 없이 '여행'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첫 번째이다. 이번엔 '효율적'이라는 친구에게는 연락하지 않았다. 조금 서운할지는 모르지만 이제 그 친구와는 조금 소원하게 지내려고 한다. 

한 달 가까운 기간을 낯선 타지에서 지내야 하니 어느 여행보다 한땀 한땀 치밀하게 준비해야 했다. 대부분의 여행자에게 항상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충분하지 않은 두 가지가 있다. 시간과 돈이다. 어찌어찌 1주일, 1개월 또는 몇 개월 이상의 여유 시간을 만들어내도 여행자에겐 언제나 부족하다. 설령 시간이 충분하더라도 여행기간과 비용은 비례하여 늘어난다. 우리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대학생이던 딸아이의 방학기간에 맞추어 시간을 내야 했기 때문에 성수기를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거대한 백화점에 들어 간 듯 살인적인 물가를 자랑하는 미국 서부에서 적절한 품위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예산 범위 안에서  계획을 세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한 달 여행을 위해 그 이상의 시간을 준비하는데 보냈다. 그러나 그 또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아무튼 나와 가족은 2018년 7월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 한 달 남짓 거의 매일 숙소를 옮겨 다녀야 하고, 5000KM가 넘는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우리 모두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위해 떠나던 그때보다 몇 배는 더 큰 열정과 흥분으로 태평양을 건너고 있었다.